기계설비법이 시행되면서 냉·난방시설, 펌프, 배관, 열교환기, 정화조와 같은 설비가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는 각각 초급, 중급, 고급, 특급 단계별 해당 자격을 갖추고 있는 자를 유지관리자로 선임해야 한다. 그런데 그 자격요건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직능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용접 분야 자격증이다.
필자는 2008년경 전기아크 용접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이어서 특수(티그, 미그)용접기능사와 용접산업기사, 공조냉동기계 산업기사를 모두 취득했다. 직업훈련학교에서 용접을 배울 때 직업훈련교사는 ‘용접기술을 익혀두면 굶어 죽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했다. 사실이었다. 용접 자격증이 있으니 취업이 용이했다. 용접은 많은 산업 분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직능이다. 플랜트 시설은 물론이고 기계설비, 건축 모든 분야에 감초처럼 다방면에 끼지 않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노후 배관을 보수하고 교체하는 일을 하면서 용접은 필수적이었다.
기계유지관리자 선임 자격에 용접 직능 자격증이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은 문제가 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용접은 기계도면 해독과 기계와 기계 재료의 특성 등을 알고 있는지 골고루 테스트 하는 상당히 고난도의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숙련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공동주택관리부문에 기계설비유지관리자 선임자격요건은 터무니없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현상의 괴리가 너무 크다. 선임 유예기간을 두고 있고 좀 더 취득이 용이한 다른 대체 자격증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의 임금수준에서 선임할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용접 자격증이나 공조냉동기계 자격증을 갖춘 사람이 훨씬 높은 임금으로 구직할 수 있는 산업 분야와 기회가 많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는 아파트에서 일할 의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용접 직능은 넓게는 안전관리 분야에 속한다. 생산제품의 품질 문제 이전에 안전에 관한 지식 없이는 자칫 화재, 폭발, 붕괴 등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이므로 안전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안전관리 차원에서 기계설비 유지관리자 자격에 용접 직능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아파트를 포함한 건축설비 관리에서 정작 필요로 하는 안전관리 직능, 예를 들어 가스기사(산업기사, 기능사포함), 소방설비기사(산업기사 포함)나 산업안전기사와 같은 자격증이 빠진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행정기관의 시야의 폭이 너무 편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제도와 법령의 취지는 좋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접지목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뿌리목인 대목과 부작용 없이 제대로 접목돼야 목적하는바 꽃을 피우든 열매를 맺든지 할 것이다. 제도가 그렇게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채 시행돼 버린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음을 가벼이 보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바람이 있다면 ‘공동주택’이라는 네 글자가 들어가는 법조문이나 법령을 제정 또는 개정할 때는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자문을 하든지 주택관리사와 같이 공동주택관리 분야 전문가들을 정책연구나 토론에 참여시켰으면 한다. 이전부터 그랬더라면 진정으로 기계설비산업의 발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고 기계설비의 안전하고 효율적 유지관리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안전 및 공공복리 증진에 기여한다는 기계설비법의 목적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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